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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가고 완연한 초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도심 위로 파란 하늘과 구름이 펼쳐지고 신선한 가을 날씨를 맞아 라이딩을 하거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맑은 하늘과 서늘한 바람으로 탐방하기 좋은 남한산성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출처 : unsplash

 

남한산성 역사

해발 약 480m에 위치하며 최대의 방어성을 위해 산의 능선과 정렬되고 길이 12km에 달하는 성곽은 조선시대 비상 수도로 사용되었던 광대한 지역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지리적 이점에 있습니다.

고로 봉이라고 하는 넓고 평평한 정상이 있는데 중앙이 낮고 측면이 해발 480m가 넘고 평지 위에 높은 산이 있어 주변 지역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남한산성은 7세기 통일신라 시대부터 사령부 역할을 하였고 통일신라는 7세기 당나라와 싸울 때 남한산성이 거처하고 보급품을 비축하기 위해 지금의 주장성을 축성하였습니다.

17세기에 지어진 남한산성은 전쟁 때는 비상 수도이자 평화에는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기 위해 계획도시로 축조된 17세기 산성입니다. 

전통 마을은 일반적으로 비상시 피난처를 위해 지어진 산 요새에 인접한 평평한 땅에 위치했습니다. 

국방, 행정, 사업, 왕실 제사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고 남한산성은 유럽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지배계급만 방어하려는 것과 달리 지배계급과 서민이 모두 은신할 수 있는 방어 구조였습니다.

 

현재 남한산성은 1970년대부터 대규모 성벽 보수 공사를 거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식당과 각종 탐방시설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남한산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성 안의 비상궁과 궁궐 안의 제사를 적극 복원해 왔으며,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남한산성 탐방로

 

1코스 : 거리 3.8km, 소요시간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산성로터리

 

2코스 : 거리 2.9km, 소요시간 60분

산성로터리 - 영월정 - 숭렬전 - 서문 - 수어장대 - 산성로터리

 

3코스 : 거리 5.7km, 소요시간 2시간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현절사 - 벌봉 - 장경사 - 망월사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4코스 : 거리 3.8km, 소요시간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남문 - 남장대터 - 동문 - 지수당 - 개원당 - 산성로터리

 

5코스 : 거리 7.7km, 소요시간 3시간 20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동문 - 동장대터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동문 - 경기도남한산성세게유산센터

 

 

남한산성 문화재

 

남한생성행궁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어 현재는 준공되었습니다.

 

내행전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측면 4칸, 전체 28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행전의 기둥 위쪽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개 겹체 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격식이 높습니다.

가공한 돌을 3단 쌓은 기단은 경사가 급하고 평지가 약소한 약점을 보완하였으며 안정감을 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좌승당 담장의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상궐 내행전의 북쪽에 건립되었습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겹쳐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숭렬전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음력 9월 5일 광주 유도회에서 제를 지냈습니다. 인조 16년에 지었으며 정조 19년에 왕이 ‘숭렬전(崇烈殿)’이라 이름을 지어 내려주었습니다.

신분이 다른 왕과 신하를 하께 모신 것이 특이한데 이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꿈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당은 좌우측에 아래 단이 둥근 형태를 한 방풍벽을 갖은 맞배지붕 형식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입니다.

2동의 부속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이 없는 대신 측면에도 창을 내지 않고 회벽을 도리까지 올려 바람과 비를 막았습니다.

 

현절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세 선비의 영혼을 위로하고 제2차 만주족 침략 당시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항복한 민족에 대한 충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이후 김상헌과 정온이 함께 모셔졌고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면전을 펼치기 전에 한국을 정복하려는 만주들에게 남한산성이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 세 학자는 적들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조선이 항복하면서 포로로 잡혔고 그들은 포로로 잡혀도 굴복하지 않고 목이 잘렸습니다. 현절사는 이 세 나라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1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고 건립하였습니다.

 

서현남의 묘비

2차 만주-청나라의 침략(1636)이 일어나자 조선 인조 남한산성에 피신했습니다. 요새로 가는 길에 그의 가신들은 거의 모두 도망쳤고 몇 명만 남겼고 신하들은 왕을 등지고 남한산성으로 돌아가며 추운 겨울날 모두 지쳐갔습니다. 그 순간 나무꾼이 나타나 왕을 안고 남한산성으로 무사히 갔고 이윽고 인조는 나무꾼 서현남을 불러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왕의 전복을 입고 싶다고 대답했고, 왕은 그것을 선물로 주었으며 그 후, 전쟁 중에 서헌남은 적의 움직임을 염탐하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왕의 옷과 함께 묻혔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무덤에 절을 하였습니다.

 

남한산성에는 수많은 문화재와 자연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탐방로를 선택하여 걸으면서 곳곳에 숨겨져 있는 문화재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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